4.19 혁명 62주년 기념일

데스크

4월 19일

오늘은 4·19혁명 62주년을 맞이하는 날.

국가보훈처는

자유당 정부의 부정과 불의에 항거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싹을 틔운 4.19혁명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62주년 기념식을

4월19일 오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4.19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염원이 강물이 되어 민주주의의 바다로 나갔듯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하자는 의미로 행사 주제를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4.19혁명의 원인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 때문이었다.

1948년~ 1960년까지 3번 대통령이 된 이승만


당시 헌법상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고, 재선(再選)에 의하여 1차 중임할 수만 있을 뿐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1956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해 3선금지조항을 없애기로 했다.

1954년 헌법 개정안을 국회 표결에 부쳤는데

표결결과는 재적인원 203명, 재석인원 202명,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였다. 이것은 헌법개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인 재적 인원 203명의 3분의 2인 136표에 1표가 부족한 135표 찬성이므로 부결된 것이어서 당시 사회자인 부의장 최순주(崔淳周)가 부결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자유당간부회는 재적인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영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이 되지 못하여 인격으로 취급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하면 135이고, 따라서 의결 정족수는 135이기 때문에 헌법개정안은 가결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유명한 사사오입개헌!​

그리하여 1956년 대통령이 또 되었다. 3번째.

그런데 민심은 이승만 정권을 멀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 정권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기고 싶었다.

대통령 후보 경쟁자가 갑자기 죽어 대통령은 당선될 수 있는데 부통령 경쟁이 심각했다.

그래서 부정선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선거전에서 야당선거원들은 계속해서 체포되고 탄압을 받았다. 반공청년단의 폭력단원들이 선거 당일 시민들이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하는가 감시하기 위하여 각 투표장에 나타났다. 많은 농촌지역에서는 3인조·9인조 등의 ‘조’가 형성되었고, 자유당에 대한 충성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가 각 조의 ‘조장’이 되어 ‘조원’들의 자유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책임졌다. 경찰은 공개적으로 자유당후보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선거 결과는 경찰 지휘부와 내무부에 의해서 완전히 날조되었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이기붕은 180만 표를 얻은 장면을 제치고 840만 표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부정선거에 대한 시위가 일어났다.​

마산에서도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섰다. 그 결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다.


그러던 중 4월 11일 1차 마산시위(3월 15일)에서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

계속해서 시위는 계속되던 중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3천여 명의 학생들 시위대가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일부 학생들은 큰 부상을 입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다음 날인 4월 19일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


강경한 진압에도 물러나지 않는 대규모 시민들의 투쟁으로 이승만은 4월25일 대통력직에서 물러났다.

​4.19혁명은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위이다.

학생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아시아 최초의 민주 혁명!

이 정신은

5.18민주화 운동(1980),

6월항쟁(1987),

21세기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지금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피를 흘리며 지켜온 대한민국임을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피를 흘리며 지키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투표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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